왜 미국은 가장 부유하면서도 부채가 가장 많은가
서론
부자나라 미국. 세계에서 가장 경제력이 강한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도 1위, 글로벌 기업의 본사가 몰려 있는 수도이자,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중심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 부채를 가진 나라로도 알려져 있다. 2025년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는 34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는 미국 GDP의 120%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이렇게 부유한 나라가 해마다 재정 적자를 내고, 국가 부채가 늘어나기만 하는 걸까. 더군다나 미국은 연방정부가 부채한도 증액 문제로 매년 의회에서 줄다리기를 벌일 정도로 그 자체가 정치 쟁점이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부채 증가가 단순한 방만한 재정 때문이 아닌, 달러 시스템, 정치 구조, 그리고 성장 전략이라는 세 축이 맞물린 결과라는 점에 주목한다.
![]() |
왜 미국은 가장 부유하면서도 부채가 가장 많은가 |
본론
달러 패권이 만든 '부채 허용 경제'
미국이 다른 나라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자국 통화로 무제한에 가까운 국채를 발행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달러는 국제 기축통화로서, 원유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제 거래에 쓰이고 각국의 외환보유고로도 유지된다. 그 결과, 미국이 발행하는 국채는 세계 투자자들에게 가장 안전한 자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른바 '세이프 헤이븐(safe haven)'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달러 시스템 하에서는 미국 정부가 빚을 지더라도 시장은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더 많은 부채 발행을 통해 경기 부양책이 작동되기를 기대하는 쪽에 가깝다.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은 물론, 해외 민간 투자자들까지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이유는 신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 구조가 미국 정부로 하여금 부채 증가에 대한 부담을 덜 느끼게 만든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통화가치 하락이나 신용등급 강등 등 부작용이 따르지만, 미국은 이 리스크를 다른 나라에 넘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 덕분에 부채를 동력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부채 기반 성장 구조'가 고착화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치적 딜레마: 지출은 늘고, 증세는 불가능
미국의 연방 예산은 상당 부분이 복지와 국방에 고정되어 있다. 사회보장제도, 메디케어, 메디케이드는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여기에 국방비까지 더하면 사실상 가변적인 지출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정치적 이유로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화당은 대체로 감세 정책을 선호하고, 민주당은 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증세나 복지 축소는 늘 반발을 일으킨다. 결국 정치권은 '지출은 줄이지 못하고, 세수도 늘리지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여기에 선거가 다가올수록 재정 적자는 뒷전으로 밀린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 팬데믹 대응, 경기 부양책 등은 모두 표심을 자극하는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 구조는 해마다 적자를 피하지 못하게 만들고, 적자는 결국 부채로 이어진다. 부채한도를 넘길 때마다 정부 셧다운 위기가 반복되는 것도 이런 정치적 구조적 한계의 연장선이다. 국민 다수가 '증세 반대'와 '복지 확대'를 동시에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채 증가를 막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채는 위험이 아닌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경제의 또 다른 특징은 부채를 위험이 아닌 성장의 레버리지로 받아들이는 문화다. 이는 정부뿐 아니라 가계와 기업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저금리 환경에서 돈을 빌려 소비하거나 투자하고, 이를 통해 더 큰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둔화되면 대규모 재정지출을 단행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금리 정책을 통해 소비를 부추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는 수조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펼쳤고, 이는 단기적으로 경기 회복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부채는 다시 늘었지만, 경제는 살아났다는 평가도 나왔다.
중요한 점은, 이 전략이 단기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자 부담이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이자 지출은 연간 1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는 국방비와 맞먹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은 더 커지게 되고, 그만큼 다른 지출은 줄이기 어려워진다. 다시 부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결론: 미국의 부채는 구조다, 그리고 경고다
미국의 부채 문제는 단순히 빚이 많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구조화돼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기축통화국이라는 특수성, 정치적 교착 상태, 부채 중심의 성장 전략은 서로 맞물리며 미국을 '부채에 의존해도 되는 나라'로 만들어 놓았다. 이는 동시에 세계 금융 시스템이 그 구조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무한히 지속될 수 없다. 금리가 오르고, 이자 부담이 커지고,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이 구조는 위기로 바뀔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달러 약세, 국채 매입 수요 감소 등은 이미 경고 신호로 보고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이 구조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투자자든 정책 담당자든, 미국의 부채가 단순한 수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기반이자 리스크'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트럼프 2기는 공약으로 내세운 감세정책을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하면서 더 많은 빚을 지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상관관계를 잘 파악하고 내 투자 전략을 잘 짜야할 것이다.